1. 인생이 언제까지 봄일 것 같아요?
그동안 인생의 고비는 여러번 있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극복해왔던 것 같다. 물론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 많은 경제적 고비들을 속히 '엄빠'찬스로 극복해왔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만의 가정이 생겨 책임져야 할 자녀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다보니 경제파탄은 나만 힘들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우리집은 돈이 없어서~.' 같은 타령조가 붙은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배우자와 언쟁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는 '돈'이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지만 불행을 피할 수 있고, 편안함을 살 수 있다.
2. 카드 리볼빙으로 가장한 가짜 봄.
첫 눈에 반해 1년을 연애하고 가진 것 없이 무작정 결혼했다. 무슨 깡이었는지 배우자의 모아둔 5천만원으로 풀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카드깡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일절 도움없이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걸까. 해주지 않고 받지 않는 결혼이라 말했다. 집도 대출, 혼수의 일부도 카드할부였다. 물론 신혼여행도 카드였다. 그러다보니 한 달 카드값이 감당이 되지않아 리볼빙에 손을 댔다. 리볼빙을 최저로 설정해두니 마법처럼 돈이 써졌다. 어차피 매달 나오는 고지서는 총 결제금액의 10프로였으니 현실감각이 무뎌졌다. 집나간 현실감각이 살짝 돌아온게 2019년. 첫 아이가 태어나고였다. 그 당시 수입의 반절을 보험금을 내기 바빴는데 그게 전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가 제태크 카페를 통해 재무설계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 혹한기는 이미 시작된 것을 나만 몰랐다.
연애시절 배우자는 나에게 빚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한 장이 없었다. 반면 나의 경우 빚도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빚도 자산은 제태크에서 말하는 레버리지가 아니었다. 잘못된 생각이지만 어차피 잔뜩 빚을 져도 결국 나라에서 갚아줄 거라는 사상에 절어있었다. 당시 정권을 생각한다면 고개를 주억거릴것이다. 신용카드로 해외여행을 갔고, 1년마다 모아둔 적금으로 쌓여있는 카드빚을 한꺼번에 결제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나는 내가 돈을 잘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말한다. 그 때 주식에 투자했더라면, 그 때 청약을 했더라면, 아니면 빚없이 한달에 백만원씩 적금이라도 들었더라면.
3. 어떤 기회도 돈 없이는 내 것이 아니다.
둘째아이가 태어날 무렵, 배우자는 회사 주식이 곧 오를 것이라는 기밀을 들었다고 나를 충동질했다. 이왕 수익을 얻을 것이라면 1-2천만원으로 되겠냐며 나는 불난집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는 1억 넘는 돈을 신용대출 받았다. 그리고 예정일보다 아이가 일찍나와 그 뒤로 어떠한 상의도 하지 못했다. 오르면 바로 팔아. 하지만 정보없이 주식 투자를 하는 이들은 오를때 팔지 못한다. 나는 배우자를 통해 그것을 확실히 배웠다. 빨간불이 켜지면 가즈아! 부터 외친다. 둘째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빚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만 있으면 산다던 부부도 등돌리게 한다.
4. 가난은 가난을 낳는다.
주식투자로 잃은 돈을 만회해보겠다면 배우자는 다음으로 경매에 빠졌다. 신세계라며 경탄했고 이걸 그동안 몰랐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한다고 했다. 나는 만류했다. 이미 신용대출이 있었고, 경매를 한다한들 내 자본금은 마이너스였다. 당장 입찰서를 쓰기위한 보증금도 없었다. 결국 또 다른 대출을 받아서 수표를 만들었다. 당시 갑자기 제한이 너무 많아졌고, 한 달 사이 대출이나 해당 법이 바뀌어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기에 법원이 한산했다. 그걸 알 리 없는 배우자는 해당 물건에 혼자서 입찰서를 냈고 한번에 낙찰했다. 그 날 하루종일 으스대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과는? 신용대출이 너무 많아 어디서도 경락잔금대출이 나오지 않았다. 단 한번도 손벌리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까지 상의드려봤지만 냉랭했다. 주식과 경매로 돈을 잃은 걸 알자 대하던 태도마저 변하셨다. 일평생 그런 것들은 '도박'과 다름없다 말하신 분들이니 당연했다. 결국 수중의 빚만 3억이 다 되었다. 짧지도 않았다. 불과 반년사이에 보지도 못한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뭐든 다 최고로 해주기 위해 제일 비싼 것만 고집했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기저귀마저도 최저가를 찾아헤매야 했다. 둘째에게는 미안한 게 많다.
5. UN 발표 청년기준 나이 65세, 난 아직 젊다.
70세가 넘어서 이런 고민과 번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선물같은 존재이면서 스승같은 존재이다. 침착함을 배우게 했고, '돈'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 최종적으로는 내 자신을 위해 '富'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적이 되었다. 이제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서 매달 소비를 점검하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 나누겠다. 한 발 내딛었으니 어디로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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